2019년을 얼추 마무리하며

곧 2019년이 끝나간다. 여기는 아직 12월 24일이니까 얼추 1주일 정도 남았다.

...라고 적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벌써 1월 7일이다.
뭐 대단한 거 자꾸 적으려 하니까 안 될거야가 되는 듯해서 쓰고 버리자! 같은 느낌으로 쓰고 있다. 트이타에서 어떤 분이 논문을 적을 때 제목으로 존나 쩌는 논문 적고 초록에 이 논문은 존나 쩌는 문제를 존나 쩌는 방법으로 해결한 존나 쩌는 결론의 존나 쩌는 저자의 존나 쩌는 논문이다 로 일단 시작하면 논문이 적힌다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2019년을 대략 마무리하려고 대략 2020년 대략 지연된 채로 대략 마무리하려고 대략 쓰고 있다.

생활의 변화

잘 했다. 끝.

농담 반 진담 반이긴 한데, 이게 되돌아보니까

2월 말에 면접 있는 거 준비한다고 1월-2월은 LeetCode랑 코딩인터뷰 완전분석 봤고
3월에는 오퍼 조정하고 Work Permit 준비했고
4-6월은 (결혼+퇴사+공연+WP 및 이사 준비) 하느라 캘린더로 테트리스99 찍었고
7월은 잘 놀았고
8월은 약간 회사를 개발 학원 다니는 느낌으로 다녔고(농담이 아니라 개발 도구가 git이랑 IntelliJ 빼고는 웬만하면 자체 제작인데 뭔 수로 1일차부터 나 버그 고쳤다! 하겠는가 - 헤르미온느 모래시계나 타디스나 드로리안이 없는 이상은...)
9-10월은 런칭 준비했고(팀이 인도 중국 한국 환상의 아시안 콜라보레이션이다보니 무려 5월 말 생겨 마지막 멤버가 8월 중순에 들어온 신규 팀이 블프 전에 서비스를 런칭하는 환장의 업무 진척도를 자랑했다 솔직히 2019년 들어온 한국인들은 좀 작작 일합시다...)
11월은 팀이 기존 시스템을 하나 인계받아서 그거 가지고 삽질하다가 한국 잠시 갔다왔고
12월은 잘 잤다(농담이 아니다) 아 그리고 드디어 가족 주치의를 구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거리밖에 안 되는 곳이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이 느리셔서 둘 다 큰 문제없이 잘 알아듣는다. 병원에서 일본어 의료 번역 지원 서비스를 하는 곳이던데 어쩌면 긴박할 때 아내가 쓰게 될 지도 모르겠다(...)

지속 가능한 취미

여기 와서 여가 시간은 확실히 늘었다.
9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회사 앞 팀 호튼이나 스타벅스 리저브나 한 블록 건너 더 큰 스타벅스 리저브 중 어딘가에서 미적대며 아침 연료를 사서 사무실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고 스탠드업 때 뭐 말할지 준비해서 10시에 스탠드업을 하면 그 뒤로는 대략 오후 4-6시 사이에 다들 퇴근하기 때문에 그냥 그 때까지 달리다가 퇴근하면 된다.

휴일도 공휴일들이 거의 다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붙어있기 때문에 (예외가 몇 있는데 이를테면 빅토리아 1세 여왕 생일을 기리는 빅토리아 데이라던가) 그런 때는 긴 주말로 죽 쉬는 것도 있고,
회사 규정상 휴가가 2종류 있는데 (Vacation, Paid Time-Off aka PTO) Vacation은 남으면 1년까지는 넘어가지만 PTO는 얄짤없이 그냥 사라진다.
이거 때문에 연말에 뭉텅 하고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경우에도 한국 갈 때 PTO를 남겨뒀기 때문에 12/24 와 27에 쓰긴 했다 - 26일 Boxing Day가 Ontario만 공휴일이나 우리 회사는 그냥 다 쉬게 해 줬다)

이렇게 보면 시간은 많아 보인다만 2019년 하반기에 생각보다 그렇게 생산적인 인간은 못 되었는데 대략 되짚어보면

  • 여전히 수면이 모자랐다: 한국 갔다오고 나서 나아졌는데 이미 2019년 초부터 새벽 2-3시쯤이 되어야 잠이 오기 시작했다. 정말 12월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던 것 같다. 그래놓으니 머리도 좀 멍하고 퇴근하면 온 몸에 피로감이 쌓이는데 정작 밤 11시가 넘으면 말똥해지는 증상 덕에 능동적 취미를 많이 못 한 것 같다.
  • 둘이 노는 게 재밌다: 데스크톱 사고 나서는 몬스터헌터 월드를 했고 2019 연말 연휴 할인을 틈타 TV와 오버쿡드2를 사고 난 이후로는 넷플릭스를 같이 보거나 오버쿡드2 도장깨기를 하고 있다.
  • 여전히 뭔가를 시작하거나 주기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 서울에 이사한 이후 줄곧 느꼈던 건데 뭔가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악기 연습이나 취미 프로젝트라던가를 생각해 두고 1주일 이상 일정이 변경되지 않고 간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 이전에는 (이를테면 악기 연습) 예전보다 떨어진 기량 때문에 뭔가 계속 연습할 맛이 안 나서 버려두거나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하면 그래도 즐겁게 할 수 있구나 까진 있는데 그게 지속적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 여전히 업무 부담이 있다: 밤에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하고 불안하게 되면 앞의 거랑 연계되어서 공부도 노는 것도 어정쩡하게 안 됨

이 외의 상황들을 몇몇 종합해보니 아무래도 중학교 후반기쯤부터 ADHD 관련 증상들이 몇 있었고(Hyperactivity 쪽은 없으니 ADD라고 해야 하지만) 이 쯤 되니 한 번 검사는 받아봐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다른 증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지 않으니 정말 체크리스트 검사한다 -> 정밀하게 검사해본다 -> 정말이면 약과 다른 치료를 병행한다 하면 되니까.

다만 이건 3월이나 되어야 시작할 듯한 게, 12월 30일 오전에 주치의 선생님을 봐서 2-4주 내로 잡힌다던 아내의 정신과 예약이 아직도 연락 안 왔다(...) 캐나다 일처리는 역시 확실하다니까. 느려터진 게.

2020년 목표를 대략 생각해보니

  • 7월 게임 데이까지 이력서에 잘 올라갈 만할 일 하기: 원래 게임 데이 목표로 프로젝트가 하나였는데 우리 보스가 오늘 뭔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말해주는 바람에 스프린트마다 업무 할당을 잘못 받으면 정말 QA 버그픽스나 하다가 끝날 거 같아서 격주 금요일마다 두뇌풀가동을 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건 내가 제일 마지막에 팀에 들어와 어쩌다보니 런칭 직전에는 QA 지원이랑 비즈니스 쪽 인간들이 일 안해서 사고 날뻔한 번역 string들 뒤치닥거리 하다가 끝났기 때문이다. 보스 시발 사람이 너 임팩트 있는 일 해야 해 너 열심히 안 한 거 아니고 정말 열심히 했지만 임팩트 있는 일을 좀 해 보자 라는데 졸라 발언이 양가적이다. 차라리 고양이는 귀여운 악마새끼에요 귀여운데 개짓을 하는데 귀여워요 같은 문장이면 그래 시발 고양이는 귀엽지! 로 끝나는데 이건 어휴 더러워서 내가 스프린트 끝내는 거 말고도 일 조금씩 더 하고 만다

  • 취미 프로젝트 안착: 이건 코드도 그렇고 개인 공부도 그렇고 악기도 그런데 좀 1) 일단 10분이라도 하고 보상을 얻고 2) 꾸준히 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님 근데 ADD 맞는데요면 혹이 하나 더 추가되겠지만.

  • Dune (50달러짜리 무슨 거대한 옛날 한영사전 굵기의 한정판 원서다) 다 읽기

  • LP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거실에 만들어보자: 아내가 이미 우리 집 첫 LP를 질렀다. 이건 반쯤 타임어택이다.

  • 올해는 둘이서 겨울 스포츠 하러 같이 가 보기: 다행히도 동물의 숲 스위치판은 겨울이 아닌 3월 말에 나온다...

  • 올해는 둘이서 원어가 영어인 영화 같이 보러 가기: 사실 영화관을 여기 와서 딱 한 번 갔는데, 12월에 트리거의 프로메어를 보러 갔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 일본어 음성에 영어자막이 나와서 가능했다. 내가 영자막으로 이해하고 아내는 음성으로 이해했다.

  • 아레나 사이즈 공연을 보러 가기: 이거 성사될 뻔 했는데, 4월 빌리 아일리시 공연 티켓이 정말 하루만에 사라지는 바람에 이루지 못 했다. 람슈타인 같은 눈이 즐거운 밴드가 올해 한 번은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