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간략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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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의 책
- 잘 그리기 금지: 인터넷에서 몇몇 분들이 "이건 사실 일러스트레이터뿐 아니라 프로그래머나 게임 개발자 직군들에게도 먹히는 책"이라고 해서 읽었다. 사실 한국 가서 사 왔거나 연초에 알라딘 US를 통해서 샀던 거 같은데 12월 30일에 이걸 읽다가 방치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방학인 겸 날 잡아서 마무리했다(...) 특히나 프리랜서로 업을 이어나간다면 배울 것이 많은 책이다.
- 유루캠: 4월에 한국에 가서 리디페이퍼 (4세대가 예구 발송일이 밀려버리는 바람에 3세대)를 사 왔다. 개인적으로 한국 웹툰의 대세를 별로 안 좋아한다. 취향에 은근히 구시대적인 기준이 많이 들어가 있는 편인데 만화는 브러시나 G펜 등의 잉크 느낌이 있거나 톤을 쓰는 작화가 좋다는 취향이 들어가 있어서 (모두 일러스트를 스크롤 그림일기식으로 연결해 만드는 웹툰하고 안 맞는다) 작화가 마음에 드는 만화/웹툰 등을 요새 거의 못 본 편이다. 유루캠은 장면들이 다른 만화들에 비해 낮시간보다 해질녘/밤시간 장면이 많고 톤을 매우 잘 쓴다.
2022년의 영화
-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누군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내는 이것에 매우 동의하며 헤어질 결심은 이 문장에 매우 충실한, 영상 매체를 굳이 분석하려 드는 우리 같은 오타쿠들에게 매우 찰떡인 영화였다. 또한 북미 일반 상영관 개봉이 매우 늦어져서 (영국/미국이 10월 14일이었는데 캐나다는 더 늦었던 거 같다 + 시네플렉스는 한국 영화는 어지간해서는 한인 타운이 있는 코퀴틀람 상영관에서만 트는데 여기 대중교통으로 가는 게 좀 미묘하다) 한국에서 다 보고 내려갈 때까지 못 보고 9월 밴쿠버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가서 봤다. 덕분에 의문의 영화제 첫 경험을 했다.
- 탑건 매버릭: 이 동네 버전 4dx로 봤는데 4dx가 전용관이 아니라 상영관 좌석의 일부 구역이 해당 좌석인 구성이어서, 4dx 데모를 해 주는 1분 하이라이트 영상을 영화 시작 전 틀어줄 때부터 "아니시발 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가만히 있는데 4dx 구역 사람들만 움직이잖아!"라는 대단히 묘한 경험을 했다. 그 미묘함과 별개로 매우 직선적인 90년대 블록버스터에 2시간짜리 롤러코스터였다.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아마도 최초로 캐나다 이주 한 이후 슬이가 먼저 보러 가자고 했다. 샘 레이미 감독 마블 영화 몇 개 더 시켜줘라.
2022년의 앨범
- 늑대가 나타났다 (이랑): 연초에는 그냥 음 괜찮은 앨범이네 여전히 이런 스타일은 내가 바로 들고 갈 취향은 아니지만, 정도였는데, 부마항쟁 행사에서 이랑이 이 곡을 부른다고 사실상의 검열을 해 버리는 바람에 정말로 가사가 말하는 시대상이 되어버렸다.
탑스터는 아래에.
2022년의 공연
- Ginger Root: 여름 즈음에 알게 된, 일본 시티팝 스타일 곡을 하는 LA의 중국계 미국인이 하는 밴드이다. 설명부터가 엄청나게 "이 작자는 오타쿠구나"싶은데 공연도 정말 작정한 오타쿠가 만들어서 70-80년대 카메라 워크를 자랑하는 4:3비율로 중계하는 카메라와 중간중간 컨셉 뉴스 및 단편을 트는 계속 즐거운 것들이 넘치는 공연이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공연 광고를 봐서 슬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보러 가게 되었고, 둘 다 매우 재미있게 보고 왔다.
- Iron Maiden: 2011년 3월에 메이든이 내한왔을 때 내는 학부 졸업논문을 쓰느라 새벽 3시에 퇴근하고 있었다. 그 동안 보컬 브루스는 박사 학위가 생기고 암이 생겼다 없어졌으며 아이언 메이든의 최연장자는 70대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2시간짜리 셋리스트를 달리지 않고 몇몇 매우 템포가 빠른 Aces High 같은 곡들은 이제 원곡의 템포가 아니지만, 매 곡마다 달라지는 무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브루스와 스티브는 "그래 역시 시애틀까지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 팀이랑 일하는 테크니컬 디렉터가 메탈헤드인데 꼭 공연 사진 공유해달래서 같이 보면서 추억하는 시간도 가졌다.
- Amon Amarth: 낫페스트 무료 공연 티켓 추첨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두 번째로 시애틀에 갔다. 10월-12월은 솔직히 회사 일이 잘 안 풀려서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연말에 이틀을 사용한 덕에 연말 방학 전까지 나름 평소의 페이스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직 끝내지 못해서 연초에 엄청 달려야 하긴 하는데... 뭐 그건 방학 끝나고부터 생각할 일이다.
2022년의 게임
- TUNIC: 귀여운 녹색 옷을 입은 (젤다 아님) 여우가 주인공인 젤다의 전설을 오마주한 롤플레잉 게임인데, 메타게임 요소로 게임 메카닉, 배경 스토리, 지도, 진엔딩을 보기 위한 힌트 등이 필드에서 모을 수 있는 게임 매뉴얼 페이지에 나와 있어서 매뉴얼 페이지 50개를 모아야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메인 월드의 배경 음악이 매우 편안하고 향수를 불러일으켜서 사운드트랙 앨범은 탑스터에도 넣었다. 난이도도 패미콤 젤다의 전설인 건 함정.
- Frogun: 플스1/2 시절의 지금 보면 못생기고 어딘가 게임이 미묘하게 불친절한 그 때를 오마주한 플랫포머 게임이다. 귀여운 모험가 어린이와 개굴총을 들고 베엘제붑의 파리 던전을 헤쳐 부모님을 찾아오는 게임인데 귀엽다고 했지 쉽다고는 안 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이전의 스테이지들을 일정 이상 달성과제 모두 클리어로 깨야 다음 스테이지가 열리는데... 전투가 없어도 다크소울의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 Into the Breach: 어드밴스드 에디션 업데이트가 되어서 다시 잡았다. 게임 디자인 리뷰하는 유튜브 채널 한두 곳에서 "턴제 전략이라서 리부트 둠과는 완전 반대처럼 보이지만 둠과 완전 똑같은 문제 해결 - 맵에 무엇이 배치되어 있는지 보고 내 위치를 잘 잡아서 적절한 무기로 처리하는 - 로 진행되는 턴제 메크 발레"라는 평을 하는 것을 봤는데, 동의한다.
- 다키스트 던전: 보드게임 후원한 게 연말에 도착해서 그 동안 다시 잡았다.
- Isle of Arrows: 스퀘어 에닉스 몬트리올에서 라라 크로프트 고와 데우스 엑스 고를 개발했던 분이 스튜디오를 차려 내놓은 모바일/스팀 게임인데, 매 턴 랜덤하게 나오는 길, 타워, 그 외 지형 타일을 배치해 40 웨이브를 버티는 타워디펜스이다. 일일 도전 맵이 버프 하나 너프 하나 추가한 채로 전 세계 사람들과 하이 스코어를 경쟁하는 방식인데 매일 머리 터지면서 하고 있다.
2022년 총평
- 회사 일이 매우 잘 풀려서 현재 직급 최상위 평가를 받았는데 10-12월 그리고 1월에 마저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너무 안 풀려서 좀 고통받고 있다. 새해 목표는 일단 이걸 빨리 마무리하는 게 되겠다. 4월 연간 평가 때 최상위 유지면 더 좋고...
- 역시나 스트레스 레벨이 올라가면 책을 못 읽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거 내 의지랑은 딱히 상관없다는) 것을 재확인한 한 해였다.
- 공연을 1년동안 15개 갔던데 (연극/뮤지컬 덕질하는 분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지만 락메탈 공연은 가면 티셔츠를 사건 앨범을 사건 무조건 머천을 지르게 되니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간다) 인지한 시점에 이미 표가 매진된 공연 두어 개를 제외하면 나름 원 없이 간 것 같다.
- 10월 말 이 동네 악기점 프랜차이즈에서 재고 방출 세일을 할 때 작은 키보드를 샀는데 사실 한 번밖에 안 만져봤다. 책상에 배치를 안 해두면 만질 의지가 안 생기는 거 같아서 방학 동안 책상 배치를 바꿨다.
내년에는
- 2022년에는 종종 만화책조차도 "중간에 잊어버렸다가 이어지는 스토리를 까먹는 게 싫어서" 손이 가지 않는 시기가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책을 읽는 습관에 대해서 좀 더 집중해봐야 할 것 같다. 대체로 수면 시간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책을 쥐게 되는 것 같지만(...)
- 키보드를 이용해서 뭔가 곡을 만들건 드럼 트랙을 찍어서 베이스를 쳐 보건 해 볼 생각이다
- 수면 위생을 좀 더 개선해야 할 것 같다 - 가을에 밤에 자는 용으로 최소 용량의 쎄로켈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걸 오후 10시 전에 먹으면 다음 날 아침 출근 전까지 간단힌 뭔가를 하고 시작할 수 있다. 대신 그 이후에 먹으면 생산성이 날아가서 못 먹고 아예 늦게 잠들거나 한 날도 있었는데 이걸 줄여보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 어느 순간부터 PT 월 4회에 그룹 운동 클래스 12회 중 PT만 가고 있는데 (운동 클래스 시간들이 오전 6.5 7.5 9 오후 4.5 5.5 이런데 매일 10시에 스크럼 회의를 하니까 오전에는 못 가고 오후에는 일찍 퇴근하기 애매해서 또 안 가고 ...) PT 외의 운동 시간을 다시 만드는 노력을 해 보려고 한다
- 손목이 거의 다 회복되었는데 이게 엄지 근처의 근육이 뭉치거나 부어올라서 신경을 자극하는 거라 손 근육이 과사용되면 다시 조금씩 아프다. 관리 잘 하는 법을 익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