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문제와 ADHD

2020년 마지막 주부터 ADHD 약인 콘서타를 처방받아서 먹고 있다. 그러니 대충 이제 3주차로 넘어가고 있고 용량이나 약종을 변경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원격 진료 세션이 며칠 후에 있어서 그 때 또 뭔가 바뀔지는 가 봐야 알 것 같지만.

19년 여름 아마존에서 업무를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대부분의 미팅이 대면으로 가능하니까 별 문제가 없었는데, 아주 가끔 1:1이 아닌 미팅에서 내가 분명 듣고 있었는데 다른 생각을 하다가(앞 문장에서 말한 부분이 시스템에서 어느 부분이 담당하더라? 같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은 다른 생각이나 아니면 정말로 다른 생각이나) 문장을 못 듣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점점 문제가 커진 게,

  • 원래 있어야 하는 온보딩 버디가 없어서 문자 그대로 아무도 신경을 안 쓰고 뭘 몰라도 바로 물어볼 사람이 없음 (특히나 엔지니어 6명 중 5명이 같은 시기에 온 한국인이던 상황에서)
  • 코로나 사태로 재택을 시작해서 모든 미팅이 원격이 됨
  • 매니저가 지금 돌아보면 누구 하나를 항상 쪼고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그 타겟이 2월 말 한국인 한 분이 때려치고 귀국하시기 전까진 그 분이었고 그 이후엔 내가 됨 (원래 강박으로 삶이 망가져봤던 사람인지라 완벽주의 강박이 생기면 일 더 못한다)
  • 일 하다 막히면 집중을 못 이어감

그래서 여기서 주치의를 구하자마자 바로 슬(아내)의 정신과 선생님 추천 요청과 내 ADHD 검사 및 후속 진단 추천 요청을 했다. 이게 2020년 1월 초였는데, 슬이 쪽 추천은 우여곡절 끝에 21년 2월 초, 내는 중간에 대기열에 포기자가 생겨서 2020년 12월 초에 예약을 잡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처음에 대기열 들어갈 땐(사실 대기열 들어갈 때까지 3개월 걸림) 6-9개월 대기였는데 중간에 전화 해 보니까 9-12개월이 되어 있었다.

사실 5월에 도저히 안 되겠어서 무급 휴직을 일단 내고 (회고: 주치의 선생님이 정신과 문제로 얘는 휴식이 필요함 이라고 진단서 못 써줄 거 같아서 그랬는데, 친구가 다른 워크인 의사한테 3개월 휴직용 진단서를 떼는 걸 보니 뗄 걸 그랬나 싶다) 인터넷을 뒤져서 사립 심리학센터에 의뢰를 해 진단을 받긴 했다. 어릴 때 발현되어서 그대로 온 게 아니라 우울증이나 불안으로 인해 일종의 후유증으로 발생한 2차 ADHD (2nd ADHD)라고. 여기서 사소한 문제는 이 의사(MD Psychologist)는 Psychiatrist가 아니라서 약처방이 안 되고, 그마저도 진단서를 준다는 일정보다 2달 늦게 줘서 아마존에 주고 { 쉬거나, 일반인과 동일한 평가 기준을 주지 마라는 얘기를 하거나 } 가 불가능해졌다는 게 있었지만 이 부분은 나중에. 약을 안 먹고 권고 받은 집중력 명상을 하는 건 생각보다 더디고 잘 되지도 않았다. 일단 ADHD 인간 특성 중에 습관 만들기가 힘든 점이 있는데 명상을 매일 하는 게 잘 안 되었다. 결국 지금 회사에 새로 입사하고 나서 진료 추천 들어간 병원에 전화를 해서 언제 진료 잡히냐고 물어봤고 마침 대기열에 누가 포기를 해서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약은 헤로인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변화를 체감하는 것들이 있는데:

  • 집중 상태가 되면 유지가 훨씬 더 잘 된다
  • 막히면 예전보다 좀 더 시도를 해 보고 포기하게 된다
  • 반사 신경 속도는 그대로지만 예상 범위에 있는 것들에 대한 반응은 좀 더 빨라졌다 (덕분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 게임 실력이 조금 늘었다. 복용 시작 후 하데스를 했더니 맨날 막히던 테세우스+미노타우루스를 깰 수 있게 되었다)
  • 식욕과 공복통이 많이 줄어서 설탕 포함된 간식 및 식사를 덜 먹는다
  • 일을 하면서 마지막 단계에 검증해야 하는 항목 중 뭔가를 빠뜨리고 가는 일이 많이 줄었다

물론 변치 않았거나 나빠진 부분도 있는 게:

  • 원래 계속 생각이 도는 인간이라 안 그래도 잠을 못 자는데 더 못잤다 -> 언제 이틀동안 각각 3-4시간 잤더니 너무 피곤해져서 10시간을 잤고 그랬더니 패턴이 좀 되돌아왔다
  • 규칙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새로 시작하는 건 아주 약간 쉬워졌거나 그대로이다 -> 예를 들면 업무에 당장 필요하지 않거나 순전히 하고 싶어서 계획에 넣어둔 개인 공부 같은 것들은 여전히 시작하기 힘들다. 아마 5월에 진단하신 선생님 소견처럼 성과에 대한 강박(잘 해야 한다 같은) 문제가 더 큰 듯하다.
  • 글을 쓸 때 집중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큰 변화가 없다 -> 이것도 아마 주는 강박이 문제인 것 같고, 부차적으로 동아리나 (메탈 혹은 게이밍) 커뮤니티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겪은 것에 대해 완전히 감정적인 분리가 안 되어서 자꾸 막히는 부분도 있다.

결국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이 1년동안 확실히 알게 된 건 1) 사소한 계산 실수를 하던 초등학교 3-4학년부터 문제가 있었다 2) ADHD 증상도 있지만 성과에 대한 강박도 여전히 그림자로 따라다니고 있다 3) 약은 생각만큼은 드라마틱하지 않다 인 거 같다. 일단은 진단 및 약 복용 이후의 삶에 대한 인지행동치료 단체 세션에 참여하는 걸 추천하시길래 대기열에 들어갔는데 이것도 2-3개월 걸린다고 하니 또 기다리다 전화 때려야지 뭐. 올해 안에 이것도 조져놔야 원격으로 끝내고 나중에 대중교통 1시간 걸리는 저 멀리 병원까지 왕복 안 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사 오면서 이 병원은 더 멀어져버렸다.